도요나가 게이사부로

재외 원폭 피해자 돕기에 온 힘을 다하여

2. 나의 8월 6일

어릴 때부터 중이염을 앓고 있던 저는, 일주일이나 10일에 한 번 사카쵸(현재의 아키군 사카쵸)에 있던 침구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8월 6일 당일도 학교를 쉬고 침구원으로 갈 예정이 있었습니다. 그 날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히로시마 역까지 걸어갔다가, 거기서 구레선을 타고 사카쵸 정거장에 도착한 것이 8시 조금 지난 무렵이었습니다. 침구원은 산으로 향해 어린이였던 제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습니다.

한참 걸었더니 갑자기 제 바로 뒤에서 쾅쾅쾅… 하는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겁이 나서 가까운 건물의 처마 밑으로 들어가 평소 훈련했듯이 손으로 눈과 귀를 막고 몸을 웅크리고 몸을 구부렸습니다. 폭풍이 순식간에 와르르 몰려와, 눈 앞에는 모래나 먼지가 막 날렸습니다. 사카쵸는 폭심지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히로시마에서는 원폭(원자 폭탄의 뜻)을 ‘피카돈’이라고 부릅니다만, 저는 소리만 느낀 뿐 빛은 안 보였습니다.

주변이 진정되고 나서 의사로 가봤더니, 사람들은 히로시마에 큰 폭탄이 떨어진 모양이라며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다 보니 가족들이 걱정되서, 치료도 안 받은 채 왔던 길을 정거장까지 달려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들어오는 열차가 없었습니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바다 건너 히로시마 하늘에 무럭무럭 높이 올라가는 구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구름 가운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과 처칠 영국 총리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버섯구름 그림 : 무카이 히토시

초등학교 3학년인 제가 왜 루즈벨트나 처칠의 얼굴을 알고 있었냐면, 그 무렵 학교에서는 철저한 군국주의 교육이 실시되어 있었고, 어린이라도 ‘귀축 미영’, ‘미영 격멸’과 같은 구호를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소문난 유행가의 가사를 바꾸어 부르던 개사곡은, 아직도 기억 납니다. 「♫루즈벨트와 처칠이 숲 속에 들어가서 훌쩍거리네. 그것을 바라본 토죠 씨, 배를 움켜쥐고 와하하하」

저는 정거장에서 몇 시간이나 가만히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아마 오후가 되고 나서라고 생각되지만, 드디어 반대편 승강장에 들어온 것은 히로시마 역 방면에서 온 기차였습니다. 그런데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얼굴은 새까맣고 모두 팔을 가슴 앞에 올리고 피부가 손가락 끝에서 늘어져 있었습니다. 질척질척해진 머리카락은 곤두서 있었으므로, 남녀 구별조차 못했습니다. 마치 기차에서 귀신들이 말없이 내려온 것 같아서 겁이 났습니다. 그 행렬을 보고 가족들이 더욱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차량에는 닮은 모습의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타고 있었습니다.

사카역에 내려온 원폭 피해자 그림: 시마다 유리나

그 때부터 한참 지난 후에야 히로시마 행 기차가 드디어 들어왔습니다. 저는 뛰어올랐죠. 그러나 기차는 히로시마 역까지 못 가고 가이타이치 역에 멈춰 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히로시마 쪽을 보니 거리가 새빨갛게 불타고 있었습니다. 어찌 해야 할 것인지 잠시 생각했으나, 문득 가이타이치 역에서 달려서 15분~20분 거리, 후나코시쵸에 외조부모가 살고 계신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집까지 달려갔죠.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할아버지, 어머님을 찾으러 히로시마로 가자요!”라고 낑낑거렸지만, 할아버지는 “그건 못 해. 히로시마 쪽을 보아라. 저렇게 새빨갛잖아. 가만히 여기서 기다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그날은 거기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님과 동생이 걱정돼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