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나가 게이사부로

재외 원폭 피해자 돕기에 온 힘을 다하여

3. 어머님과 남동생의 8월 6일

8월 6일, 오나가쵸 반상회(‘정내회’라고 함)에서는 220명을 ‘건물 소개(가옥 철거)’에 참여시키도록 일정을 짜고 있었습니다. 동원이 발령되면 한 가족 당 한 명은 꼭 참여해야 했습니다. 국민 의용대 오나가 분대 220명은 아침 6시에 모여서 반상회 회장을 대장으로 모시고 6시 반에 쇼와마치(폭발 중심지로부터 1.7킬로, 현재 나카구 쇼와쵸)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히지야마 다리 주변이 목적지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동생은 3살이었는데, 그 어린이한테 집을 봐 있으라며 혼자 두고 나갈 수도 없어서, 어머님이 손을 잡고 데리고 갔습니다. 건물 소개란 중요한 시설 주변의 건물을 허물고 공터를 만들거나, 마을 중심부에 방화지대를 조성하므로써 공습 받았을 때 화재 발생을 방지하는 사업입니다.

작업은 보통 8시 반 시작이며, 오나가쵸 의용대는 7시 45분 쯤에 목적지로 도착했습니다. 저희 어머님처럼 아이와 함께 나온 사람들도 나름 있었던 것인지, 십여 명의 아이들이 큰 버드나무 밑에 모였습니다. 성인들이 줄 서서 지자체 직원으로부터 작업 절차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던 마당에, 원폭이 뻔쩍이며 터졌습니다. 어머님 기억에 따르면 빛깔이 아름다웠으나 번개의 수십 배나 센 빛이었다고 합니다. 소리는 안 들렸답니다. 어머님은 머리에서 열탕을 뒤집어 썼듯이 여겨져, “뜨거워!!”라고 소리치다가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참고문헌: 히로시마 원폭전재지 제2권

어머님은 한 동안 정신을 잃은 채 계셨다고 하는데, “엄마, 아파! 아파!”라는 동생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서 다른 아이들과 놀았을 동생이 웬일인지 어머니 몸 밑에 깔려 있었습니다. 그 덕에 동생은 다치지도, 화상을 입지도 않았습니다. 훗날에 어머님은, 현장에서 쓰러지거나 죽은 사람조차 있었는데, 상처 하나 없었던 사람은 아마도 동생 단 하나 아니었느냐고 하셨습니다. 주변에서 군인들이 “여러분 도망갑시다. 금방 불이 닥쳐 올 것입니다.”라고 외치며 돌아 다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생존자들이 스스로 어떻게든 피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은 원폭이 떨어졌을 때, 폭발의 중심으로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깨부터 얼굴까지 화상을 입으시고 말았습니다. 오른팔도 살짝 화상을 입으셨으며, 얼굴이 부어 계셨습니다. 어머님은 세 살짜리 남동생 손을 끌고 달아났습니다. 가까이에 흐르는 교바시 강에 놓인 히지야마 다리는 건너갈 수 있는 상태였는데, 그 앞에 히지야마라는 작은 언덕이 있어서 거기로 피난하기로 했습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니 강은 강물이 안 보일 정도로 주검이 떠 있었다고 합니다. 산으로 오르는 길가에도 많은 주검이 눕혀 있었습니다. 살아 있음에도 등이 찢어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사람, 찢켜서 팔을 잃은 사람, 눈알이 떨어진 사람, 마치 지옥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런 사이를 스쳐 자나가며, 두 사람은 겨우 산 위까지 올라갔답니다.

정오를 지났을 무렵,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셨답니다. 평소 다니는 길은 불이 나서 못 지나가니, 크게 돌아서 몇 시간 만에 귀가하셨답니다. 폭풍 탓에 집은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거나 기와가 날아갔으나, 그때는 아직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어머님과 동생은 어찌나 목이 말랐던지 하도 물을 드시고 싶어서 방화 용수로서 욕조에 모아둔 물마저 마셨답니다. 훗날에 어머님은 “그만큼 맛있는 물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평생 못 잊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들어가 한 숨 쉬고 계셨는데, 동생이 “엄마, 불이야! 불이 온다고!”라고 외쳤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이 시내 외각으로 점점 번진 것입니다. 어머님과 남동생은 가까운 밭으로 도망치셨답니다. 거기서 머무르고 계셨더니 지나간 이웃집 사람이 “저기, 토요나가 씨 맞이시죠? 여기는 위험하니까 가셔야죠.”라며 두 사람을 후타바산까지 데려가 주셨답니다. 그 당시 후타바산에는 화장터가 있었는데, 그 앞에 조금 넓은 마당이 퍼져 있었습니다. 그곳에 새까맣게 화상을 입은 수십 명 사람들이 눕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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