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나가 게이사부로
재외 원폭 피해자 돕기에 온 힘을 다하여
4. 8월 7일 이후
다음날 아침, 할아버님과 근처에 사는 중학생 사촌과 저는 큰 수레를 끌고, 후나코시 고개를 넘어 후츄를 지나 어머님과 동생을 찾으러 히로시마를 향했습니다. 도중 히로시마 쪽에서는 사카 역에서 본 사람들 닮은, 얼굴이 시커멓고 옷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지고 팔을 가슴 앞에 올린 사람들이 헐렁헐렁 지나갔습니다. 아마도 몇 백 명이나 봤을 것입니다. 어슬렁어슬렁, 길 가득 펼쳐져 마치 행렬 같았습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 나왔으니 그 중에는 밤새 내내 걸어온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겁이 나고 무섭기 짝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무섭다는 느낌조차 안 나게 되었죠.
한 시간 반 정도 걸어서 마침 오나가쵸 저희 집으로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집은 불에 타서 겨남은 게 하나도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아무리 찾아 봐도 주검 하나 안 보였습니다. 오나가쵸 사람들은 쇼와마치에 건물 소개를 나갔다는 소문을 들어, 어찌하든지 간에 단바라까지 가봤지만 눈 앞에 시커멓게 불탄 벌판이 펼쳐 있어, 거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날은 다시 후나코시(船越)까지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8일, 다시 3명으로 오나가쵸까지 가봤습니다. 집 근처에 히가시연병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눕혀 있던 사람들을 한 사람 씩 살피고 찾아봤지만 어머님도 동생도 못 찾았습니다. 히가시연병장 주변에는 죽은 말들이 누워있었습니다. 이날도 결국 다시 후나코시로 돌아왔습니다.
9일 역시 오나가쵸 주변을 찾아봤습니다. 우연히 만난 행인에게 물어봤더니, 이쪽 동네 사람들은 후타바야마에 있는 화장터 앞 마당에 수용되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후타바야마에 가봤더니, 화상을 입은 사람이나 다친 사람이 수십 명이나 쭉 땅바닥에다가 눕혀 있었습니다. 한 사람 씩 얼굴을 살펴봤는데 모두 얼굴에다 화상을 입은 상태이며, 누가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할아버님이 큰 소리로 “쓰야코! 쓰야코!”라고 어머님 이름을 부르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멀리서 남동생이 “할아버지!!”라고 답했던 것입니다. 동생 쪽으로 가니, 서로 닮은 새까만 모습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부상자들이 죽 누워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누가 엄마인데?”라고 물었더니, “이거다! 이게 엄마야!”라고 해서 얼굴이 시커멓게 부었고, 입던 옷도 타서 너덜너덜 누워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엄마라고 말했던 거죠. 만약 동생이 없었다면 결코 어머님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내기 전까지 어머니는 매일 가까이서 “오늘은 몇 명 죽었다.}라는 소리가 들리니 살아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만약 남동생이 할아버님 목소리를 눈치채지 못했다면, 만약 할아버님이 거기서 어머님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다면, 어머님과 남동생은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면 남동생은 타인의 도움으로 원폭고아로 살아야 했었을지도 모릅니다. 동생은 6일부터 9일까지 줄곧 어머님 곁을 지켜 주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적이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님과 남동생이 살아남아 계셔서 정말 뿌듯했습니다.
우리는 큰 수레에 어머님과 남동생을 태우고 후나코시 집까지 돌아갔습니다. 후나코시에는 이모님들이 살고 계셔서, 아픈 어머님을 이리저리 돌봐 주셨습니다. 어머님은 얼굴과 팔에 화상을 입어 매우 아파하셨습니다만, 당시에는 바르는 약조차 제대로 없었습니다. 오이나 감자를 갈아서 화상에다 발랐습니다. 그래도 아예 치료도 안 하는 것보다 낫겠다는 말이죠. 그 무렵 오이와 감자는 매우 귀해서 우리 스스로도 좀처럼 못 먹는 채소였는데, 이모님들이 그것을 아낌없이 내 주신 것입니다.
남동생은 우연히도 어머님의 몸 밑에 깔려 있어 부상도 화상도 입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할아버님 댁에 도착한 그 밤부터 설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도 안 했는데 일주일 내지 열흘 동안이나 설사가 이어졌습니다. 다리와 허리 역시 점점 안 서게 되고 눈만 멀뚱멀뚱해서 혹시 이제 죽어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점점 쇠약해지셨습니다. 당시로서 급성 방사능 장애라는 것은 사뭇 몰랐습니다.
히로시마에서 가깝기도 한 후나코시쵸에는 이재민들이 많이 피난해 왔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아파~.” “지겨워~.” 하는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먹여주거나 발라주는 약은 어디로 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증환자들부터 차례로 숨을 거둔 것입니다. 다행히 어머니와 남동생은 가까이에 살던 친척들이 변변한것이 없는 와중에도 식사를 갖다 주셨던 덕에, 몇 달이나 걸렸으나 둘 다 조금씩 건강을 회복해 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