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나가 게이사부로
재외 원폭 피해자 돕기에 온 힘을 다하여
6. 본명을 대지 못 한 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있다
제가 가르친 학교가 있던 지역에는 재일조선인들이 많이 거주하여, 학교에는 재일조선인 학생이 반 마다 몇 명 식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재일조선인임을 숨기고 일본식 이름으로 다녔으니, 다른 학생들은 그걸 알아내지 못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는 마음이 몹시도 아팠습니다. 가능하면 실명으로 당당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랬습니다.
조선반도 출신이 왜 일본에 이리 많이 살고 있을까요? 그리고 왜 일본식 이름을 대고 살고 있을까요? 그것은 일본이 1910년 대한제국을 병합하고 식민지로 만든 데서 비롯합니다. 일본은 조선의 백성들에게 혹독한 공출을 요구하여, 고향에서 먹고 살기가 어렵게 된 사람들은 삶의 길을 찾기 위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 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 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의 국내 노동력 부족 때문에 징용공으로서 끌려온 사람들마저 있었습니다. 1939년에는 조선과 일본에 사는 모든 조선인이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창씨개명’이라 함). 그 탓으로 일본에 계속 사는 조선반도 출신자는, 앞으로 실명과 일본식 이름의 두 가지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본 패전 후 귀국한 사람들도 많았으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일본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웃 일본인으로부터 심하게 차별을 받으면서, 실명을 밝히는 것을 포기하며 일본식 이름으로 살아왔습니다.
1970년쯤 되면서, 카이타쵸(현재 히가시구 야마네쵸)에 있던 조선학교 학생들과 다른 학교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자꾸 일어났습니다. 7개 일본 학교가 조선학교 하나와 싸음판을 벌이는 일이 반복된 거죠. 그것이 기삿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싸움의 뿌리에는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의식이 깔려 있었던 거죠. 저는 이 문제를 어떻게든 좋게 해결해야 된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그 무렵 조선학교 선생님을 한 분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여러 고민 끝에 대화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학생 사이 교류 행사나 야구 교류전, 교원들 끼리 친목회 등을 기획하였으나, 그것 만으로 해결하지는 못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조선학교 선생님을 우리 학교에 모시고, 조선인 이름으로 조선어강좌를 개강해 주실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 실명으로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이 보아도, 실명으로 당당히 교단에 서는 교사가 있다는 사실이 자극이 도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우리 학교내에서도 동의를 얻어 히로시마현 교육위원회에 타진했는데, 학교에서 가르칠 거라면 보조교사 면허가 꼭 필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마침 히로시마의 사립고등학교인 소토쿠학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의 조선대학교에 진학하다가 교사가 되어 히로시마조선학교에서 가르치신 강주태 선생님이 계셨고, 교육위원회도 일본의 학교를 졸업하신 분이라면 적절할 것이라고 해서, 외국어 조교사 면허를 내 주었습니다. 조선어강좌 개설은 오사카, 효고에 이어 세 번째였답니다.
공업계열 학과는 강의 시간표에 여유가 없어 선택과목을 추가하지 못했으나, 보통과 선택과목의 하나로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설문조사 해봤더니 예상과 달리 수강 희망자가 40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1973년 조선어 강좌가 시작되었습니다. 강 선생님께 “일본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니까, 도요나가 선생님도 함께 교재를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씀하셔서, 저도 교재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과 책상을 나란히 해서 조선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저도 함께 시험을 보자고 졸라 댄 바람에, 시험까지 봐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983년에 강주태 선생님이 조선학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취임하면서, 강좌를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오실 강사를 좀처럼 정하지 못했던 가죠. 교육위원회가 일본의 학교를 졸업 안 한 사람에게 교원 면허를 낼 수 없다고 통보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영어수업을 담당하는 외국인 강사를 예로 세워서 교육위원회와 교섭을 진행했습니다. 그러자 영어강사는 본국에서 교원면허증를 취득한 사람들이라고 반박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학교에 가서, 본국에서 교원면허증를 따 오실 선생님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행히 소개 받은 렴화선 선생님께써 봄방학, 여름방학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가서 4년 만에 국어교사(조선어 교사를 의미함) 면허증를 취득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히로시마현교육위원회에 신고함으로써 보조교사 면허증를 발급받았습니다. 이리하여 강좌를 계속할 수 있게 된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