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나가 게이사부로

재외 원폭 피해자 돕기에 온 힘을 다하여

7. 버림 받은 재외 원폭 피해자를 돕고 싶다

1971년 한국 문교부가 주재하여 민단(재일대한민국교류민단. 현재 재일대한민국민단.)이 일본 각지에서 한 명씩 모두 9명의 일본인 교원을 뽑아, 한국에서 약 1주일간 연수를 받도록 하는 기획이 있었습니다. 저는 히로시마에서의 참가자로 뽑혔습니다. 연수는 한국에서의 교육에 대해 배우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출발지가 오사카 국제 공항(소위 말하는 이타미 공항)이었음으로, 전날은 호텔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방에서 우연히 NHK 뉴스를 봤는데, 히로시마에서 원폭을 맞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 신영수 씨가 재한 원폭 피해자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구제를 요구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저는 이왕 한국으로 갈 거라면 꼭 재한 원폭 피해자들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입국한 다음은 숙소에 머물게 되었는데, 과밀한 연수 스케줄로 인해 한국원폭피해자협회를 찾는 시간을 좀처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8월 15일 광복절 전날에 1박 2일로 홈스테이로 가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제가 머물게 된 가정은 외교관 댁이며 어디 가보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 보셨는데, 제가 한국원폭피해자협회를 찾아가고 싶다고 답했더니 통역을 붙여 차를 내주셨습니다. 서울의 번화가에는 예쁜 빌딩이 늘어 서 있었는데, 한 발짝 뒤에 들어서면 판자촌이 펼쳐 있었고 협회는 그 일각에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방문이었음에도 안으로 들어가 보니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분이 네 명 계셨습니다. 그 분들이 일본어에 능통하신 덕에, 서로 통역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일본 정부, 한국 정부 할 것 없이 어느 쪽으로도 지원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한국으로 귀국한 원폭 피해자가 처한 어려움에 대해 호소하셨습니다. 일본 측은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보상은 완료되었다고 주장해왔고, 한국 정부는 군사정권이었으니 보상을 요구하는 운동을 엄격히 단속했었습니다. 그 결과 재한 원폭 피해자들은 방치되었던 거죠. 저는 일본을 떠나기 전에 동료들이 저에게 선물해 준 용돈 5만엔을 그들에게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들은 그 사실을 언론이 보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셨으니, 다음날 취재로 한국일보가 나온 가운데 돈을 그들에게 전달했습니다. 훗날 사진이 들어간 작은 기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저는 재한 원폭 피해자와 편지 등을 주고 받는 사이에, 그 분들이 원폭으로 그때까지 일본에서 쌓아온 모든 것을 잃고, 해방되고 나서 몸 하나로 귀국하셔야 했으며, 방사능으로 인한 장애인지도 모른 채 몸이 허약해짐으로써 일하지도 못하며, 일본에서 귀국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비참한 일상을 버티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해 12월 오사카에서 ‘한국 원폭 피해자를 구원하는 시민 모임’이 결성되었다는 기사가 아사히 신문에 실렸습니다. 저는 협조하겠다고 곧바로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히로시마에서도 똑같이 결성해 달라고 답이 왔습니다. 그래서 다음 해인 1972년, 동료교원, 경성제국대학(일본 식민지 시기 조선에 설치된 제국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카와무라 토라타로 의사,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징용공을 돌봐 주셨던 후카가와 무네토시 씨들과 함께 히로시마 지부를 출번시켰습니다. 저희는 재한 원폭 피해자의 일본 원정 치료와 재판지원 등 활동을 펼쳤습니다.

일본 원정 치료라면 일본 정부도 1980년부터 1986년까지 6년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한국인의 일본 원정을 돕고 치료 받도록 도왔습니다. 그 환자 인원은 349명(히로시마 226명, 나가사키 123명)이었답니다. 그러나 겨우 2개월 만에 치료가 중단되는 등, 충분한 지원이었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한편 가와무라 의사는 1984년 동료와 함께 ‘재한 피폭자 도일 치료 히로시마 위원회’를 출범하셨는데, 자신이 운영한 병원에다 재한 원폭 피해자 분들을 입원시켜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 주셨답니다. 그 대부분을 스스로 출자하거나 기부를 받아서 충당하신 것으로 알고 있죠. 2016년까지 572명이 치료를 받았답니다.

재한 원폭 피해자와의 서신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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