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나가 게이사부로

재외 원폭 피해자 돕기에 온 힘을 다하여

8. 원폭 피해자는 어디에 있든 피해자다

저는 재외 원폭 피해자의 재판지원에 특히 노력해 왔습니다. 일본 거주 원폭 피해자는 1957년에 제정된 ‘원폭의료법’에서 국가가 정하는 일정한 조건을 채우면 ‘피폭자 건강수첩’(이하 수첩)을 교부 받으면서, 무료 건강검진, 공인질환 치료에 드는 의료비를 급부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 현재와 같은 제도가 마련되기까지 수십 차례에 걸친 법령 개정이 있었다.) 그러나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원폭을 맞은 후 모국으로 돌아가거나 제3국에서 살게 된 원폭 피해자들은, 이와 같은 혜택을 못 받았습니다.

1972년에 한국인 손진두 씨가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치료 시설도 없어, 원폭으로 인한 질환 때문에 겁이 나서 일본으로 밀입국하게 된 거다. 내 몸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건 일본 정부인데, 일본이 책임지고 치료해야지!”라고 울먹이며 호소하며, 수첩 교부를 요구하기 위해 후쿠오카현 지사를 고소했습니다. 이 재판에선 손진두 씨는 1심, 2심 모두 승소했죠. 그리고 1978년 일본 최고재판소(한국 대법원에 해당)은 “일본 정부는 조선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국가 보상적 배려를 요한다.”며 후쿠오카현의 상고를 기각했으며, 승소 판결은 확정되었습니다. 결국 외국 거주 원폭 피해자들은 일본을 방문하여 수첩을 교부 받으면, 건강 검진, 질병 치료, 여러 수당 수급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죠.

그런데 1974년, 일본 후생성(현재 후생노동성)은 ‘공중위생국장 402호 통달’을 통해 “일본국 영역 밖으로 거주지를 옮긴 원폭 피해자에게는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정했기 때문에, 해외 거주 원폭 피해자가 귀국해 버리면 피해자로서 지원을 못 받게 되었습니다. 해외 거주 피해자라 하더라도 일본으로 오면 수첩을 교부 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도, 일본을 떠나면 수첩은 효능을 잃고, 치료도 못 받고, 수당이 중단되어 버린 거죠.

1944년 징병되어 일본군 병사로서 히로시마에 끌려와 원폭을 맞은 재한 원폭 피해자 곽귀훈 씨는, 가슴, 팔, 아랫배에 켈로이드가 남았습니다. 1998년 5월~7월 일본 오사카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으나, 이 402호 통달 탓으로 귀국과 동시에 지원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 분이 그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서, “원폭 피해자는 어디에 있든 피해자다. 402호 통달은 불법이니 한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수첩은 유효하며, 치료도 받을 수 있고, 수당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호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해 10월, ‘수당지급중단의 취소’를 요구하여 일본 정부와 오사카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셨습니다. 이 재판 역시 1심·2심 모두 승소하여, 일본 정부가 상고를 포기한으로써 2002년 판결이 확정되었죠. 이 재판을 계기로 한국, 미국, 브라질 거주 원폭 피해자들이 차례로 제소했습니다. 마침내 일본 최고재판소에 의해 2007년, 402호 통달은 위법이라고 인정되었죠.

이런 재판과는 별도로 징용공 재판도 있었습니다. 징용공이란 1944년 일본 정부가 내린 징용령에 의해 식민지 조선에서 강제로 끌려간 노동자를 말한 것이며, 일본 각지의 건설현장, 공장 등에서 일을 시켰습니다. 그들은 열악한 숙소, 검소한 식사를 견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시간의 중노동을 강요받았습니다. 히로시마에는 미스비시 중공조선소·기계제작소의 약 2800명을 비롯한 3300여명이, 나가사키에는 1만여명이 끌려와, 대다수가 원폭을 맞았습니다. 히로시마에서는 1995년, 옛 징용공 여섯 분(후에 약 40명이 더 늘었다)이 강제 연행, 원폭으로 인한 피해를 받은 후의 방치, 미불 임금 등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여, 일본 정부 및 해당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을 제기하셨습니다.

그 중 강제연행 및 미불임금에 대한 보상은 1심, 2심 모두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핑계가 되며 원고가 패소됐고, 최고재판소 또한 상고를 기각했죠. 다만 원폭을 맞은 후 방치한 것에 관해서는, 최고재판소가 원폭 3법의 부적응으로 인한 이들의 피해를 인정, 승소 판결을 내림으로써 1인당 100만엔 및 변호사 비용 20만엔을 지불 받는 것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 후, 저희는 후생노동성과 교섭을 이어가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외 거주 원폭 피해자 약 4000명에게, 1인당 100만엔과 변호사 비용 10만엔이 지불되도록 해왔습니다. 그리고 교섭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죠.

저는 현재까지 40년에 걸쳐 일본 각지에서 제기된 외국 거주 원폭 피해자의 재판을 지원해 왔습니다. ‘원폭수첩’을 취득할 때 필요한 2명의 증인을 찾는데 동분서주하거나, 수첩취득 혹은 일본으로 오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여 지자체에 제출하는 것을 돕거나, 후생노동성과 교섭하거나 해 왔죠. 이제까지 외국 거주 원폭 피해자 관련 재판이 모두 43건 제기되었는데, 저는 그 중 약 80%의 재판에 관여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승소를 거둔 거죠.

2008년이 되어서야 외국 거주 원폭 피해자의 수첩 신청 접수 수속을 현지 일본대사관이 이행하도록 하는 ‘원자폭탄 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관한 법률’(소위 ‘피폭자원호법’) 개정안이 참의원 본회의에서 가결되면서, 성취되었습니다. 원폭이 투하된 지 벌써 63년이 지났는데 말이죠. 2023년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수첩을 가진 외국 거주 원폭 피해자가 한국, 대만, 캐나다, 미국, 호주, 브라질 등 30개국 이상 2524명이 계시고, ‘피폭자원호법’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폭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수첩 보유자가 2명 계시는데, 일본과 국교가 맺어지지 않는 바람에 ‘피폭자원호법’의 적용을 못 받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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