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나가 게이사부로
재외 원폭 피해자 돕기에 온 힘을 다하여
9. 수학여행으로 히로시마를 찾는 학생에게 증언을 시작하다
1983년, 오사카부립 니시나리고등학교의 교원 몇 분이 학생들에게 원폭 피해에 관한 증언을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히로시마으 원폭 피해자 단체 등을 나눠서 방문하여, 증언해 주는 원폭 피해자를 15명을 구하러 오셨습니다. 그 중 한 분이 히로시마전기대학교부족고등학교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저도 원폭 피해자입니다.”라고 자기소개하자, 그 선생님이 “그럼 꼭 증언해 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증언한 일이 없었던 제가, 선생님들의 노고를 생각하여 마지못해 맡기로 마음을 먹은 거죠. 선생님들은 몇 번이나 히로시마를 찾으셔서, 몇 달 만에 15명의 원폭 피해자들을 소집하셨습니다.
근데 그해 11월에 평화공원에 온 220명의 니시나리고등학교 학생들을 보고 깜짝 놀랐죠. 미리 선생님들로부터 학교의 정황을 들었었으나, 막상 화려한 옷을 입고 액세서리로 장식하고 화장을 한 여학생들이나, 몸가짐이 칠칠치 않은 옷을 입고 이야기를 들을 마음도 없어 보이는 남학생들을 보면서, 초조함을 느꼈습니다. 15명의 원폭 피해자들은 한 사람당 15~20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평화공원 비석들을 둘러보았는데, 그 와중에 학생들이 절반 정도 사라지고 말았죠. 숙소는 학생들이 밤 사이에 외출 나가지 못하도록 (히로시마 근교) 하쓰카이치시의 산속에 있는 ‘노우가타고원호텔’이었습니다. 우리는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그 호텔까지 올라가서, 반으로 나뉜 학생들을 한 명씩 맡아 다시 원폭 피해에 관한 증언을 해봤습니다. 저희가 증언을 시작했는데도 드러누은 채 있거나, 옆의 친구들과 계속 수다를 떨고 있는 아이도 있었죠. 그런데 증언을 진행하다 보니 그들이 귀를 기울여 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학생 두 분이 내게 달려와 눈물을 흘리며 “이런 얘기는 난생 처음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라고 말해 주었죠.
현재는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의 계발과가 각지에서 오는 수학여행 학생에게 원폭 피해자를 파견하여 증언을 듣는 제도가 갖추어져 있으나, 당시로서는 사전에 학교 마다 히로시마로 찾아와서 각각 원폭 피해자를 찾아 증언을 요청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날 증언을 마친 저희 15명은 수학여행 학생에게 증언해 주는 원폭 피해자들의 모임을 만들 필요에 대하여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번이나 모인 끝에, 1984년에 13명으로 ‘히로시마를 증언하는 모임’을 출범시켰습니다. 이 모임이 공공기관이나 원폭 피해자 단체 등에 귀속하지 않고, 원폭 피해자끼리 처음으로 결성한 모임이 된 거죠.
다음 해 니시나리고등학교에서는 수학 여행지로 히로시마를 정하려고 하다가 기각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수학여행 참가자 중 학생회 임원이 된 남학생이 하급생들에게 호소하여, 여름방학 때 버스 2대에 학생 58명, 교사 15명을 태워 히로시마로 데려와 주었던 거죠. 이것은 참으로 뿌듯하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모임 멤버들이 증언해 주었죠.
증언하는 모임이 결성된 지 몇 년이 지난 후, 증언해 줄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어머님한테 푸념했더니, 어머님이 “나도 증언해 볼까?”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까지 만해도 어머님은 증언 활동 따위엔 전혀 관여하지 안 해왔기 때문에 깜짝 놀랐는데, 동시에 무척 뿌듯했죠. 게다가 증언에서 어머님께서 “저는 원폭으로 몸은 커녕 마음마저 불탔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이때까지 한 번도 그런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었죠. ‘마음이 불탔다’는 그 말씀에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임 회원은 많아야 30명 가까이 늘어, 해마다 약 4만 명의 수학여행생에게 증언을 해왔으나, 돌아가시거나 건강상 문제로 활동 못하게 된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2001년에 해산해야 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한국 원폭 피해자를 구원하는 시민 모임’ 명의로 자료관 계발과에 등록함으로써 활동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저도 스스로 2003년에 전립선암, 2007년에는 위암에 걸렸으나, 무사히 나았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로서 역시 증언활동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죠. 올해(2023년)가 되면서, 저를 빼고 모임 회원이 모두 세상을 떠나 가 버렸습니다. 저는 살아남은 마지막 회원으로서 모임이 사라지는 것을 견디지 못해, ‘히로시마를 증언하는 모임’을 부활시키기로 했습니다. 회원 자격으로서 수첩이 있건 말건 간에 상관없이, 원폭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정했습니다. 현재 12~13명이 활동에 참여해주고 있습니다.

